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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이야기들/인물과 사건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과 인천상륙작전 (1) : 6.25 한국전쟁의 원인

전세계적으로 꼽히는 비극의 전쟁이 있다. 6.25 한국전쟁인데 그 이유는 전쟁 중에 민간인 사망 비율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평균적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그 전쟁 기간동안 사망한 사람들 중(질병사 포함)에 민간인은 65%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6.25 한국전쟁은 민간인의 사망률이 80%이상으로 나온다. 이념전쟁인 한국전쟁은 남과 북이 밀고 밀리는 접전을 반복함에 따라 자본주의가 뭔지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순진한 국민들만 이념이라는 명분아래 보복차원으로 학살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전쟁사를 보다보면 현 시점과 떨어진 시대의 전쟁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단지 숫자로 보이기 마련인데, 한국전쟁과 같은 얼마 되지 않은 전쟁을 분석하면 수치 이상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필자의 조부께서도 한국전쟁에서 국군으로 참전하여 순국하셨기에 한국전쟁을 일으킨 이들에 유감이고 한국전쟁에서 무능력한 모습을 보인 대한민국 리더들에 탄식하게 된다.




6.25 한국전쟁의 발발이유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인민군이 남한을 기습적으로 침공했다. 김일성은 전쟁을 일으키기 직전까지도 대한민국에 우호의 제스처를 취하며 한국지도부를 안심하게 만들었기에 대비는 허술했고 그 대가는 참혹했으며 눈깜짝할 사이에 낙동강까지 전선이 밀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한민국의 지도부는 왜 방비를 하지 못했을까?


대한민국과 러시아가 1990년에 수교를 하면서 냉전시대의 반목을 청산하고자 하는 합의로 옐친 대통령이 김영상 대통령에서 2,000페이지 가량되는 한국전쟁에대한 비밀문서를 넘긴다. 이 비밀문서에는 한국전쟁의 발발의 이유와 과정이 나와있는데, 김일성과 박헌영이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을 찾아 나누는 대화가 기록되어있다.


1949년 3월 김일성과 박헌영이 모스크바에 방문하여 스탈린과 대면을 하게 된다. 거기서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남쪽에서 무력도발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의 당위성과 지원을 요청하게 되는데 스탈린은 대한민국과 북한의 객관적인 전력정보를 요구하고 북한이 압도적인 상황을 인지하고는 때를 기다려 적이 먼저 공격을 하면 반격으로 남진을 하자고 조언한다. 즉, 김일성은 이승만의 휴전선 부근 국지도발을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승만은 왜 끊임없이 무력도발을 하며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는가?


소련과 미국은 당시 서로 전쟁은 하고있지 않지만 파워게임으로 누가누가 더 강한지 경쟁 중이었고 서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체제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세력들을 만들고 많아진 우군들을 증거로 이를 증명하고자 했다. 소련이 한 번 손을 뻗친 동유럽은 100% 공산화가 진행되었기에 미국은 똥줄이 탔고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공산주의를 배척하는 반공을 표방한 국가들에게 경제적·군사적 원조를 아끼지 않겠다(트루먼 독트린)고 하여 실제 터키와 그리스는 미국의 원조를 엄청 빨아먹게 된다.


이에 이승만은 미국의 원조를 받기 위해서라도 끊임없는 공산세력에대한 도발로 휴전선 부근에서 무력도발을 계속하여 지시하고 빠른시일내에 북진통일을 이룩하겠다고 연설 및 발표를 하고 다녔던 것이다. 김일성은 이승만의 도발이 신경쓰였고, 남한의 빨치산에게 지령을 내려 남한 세력을 어지럽히라고 하여 때를 기다리는 기존의 전략에서 선빵을 치는 침략으로 빠르게 진행시켜버린 것이다.



49년 3월, 스탈린과 김일성이 모스크바에서 서로의 견해를 확인한 후, 한국의 정세가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기 좋은 구도로 변해가고 있었다. 소련이 북에서 철수했다는 이유로 1949년 6월 미군이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된다. 그리고 8월, 소련은 핵실험에 성공하여 미국과 소련의 양대강국의 파워는 균형이 잡히게 되고,


10월에는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중국을 통일한다. 원래 미국은 장제스의 국민당을 지원하여 아시아에 영향력을 발휘하려 했는데 장제스의 무능함으로 아시아의 광장격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이 공산화 됐으니 미국은 기존의 계획들을 다시 수정, 재검토 하게 된다.


1950년 1월에는 미국에서 공산세력인 소련과 중국의 영토확장을 무조건 막아내겠다는 선(녹색 줄)을 공표했는데, 이 애치슨 라인에 한국이 빠져있다. 한국이 빠져있는 이유는 이승만의 도발행위에 경고를 준다는 의미로 했다고는 하나 대만까지 빠져있고 실제로는 대만과 한국 영토의 사수에 미국이 상당한 힘을 지원해준 것으로 보아 애치슨 라인은 미국 지도부의 공산세력에대한 미끼라고 보여진다. 그리고 2월에는 중국과 소련이 우호동맹 상호원조를 약속하는데 어느 한 쪽이 침략 받으면 원조한다는 내용이다.


하여튼, 김일성에게 일련의 유리한 요건들이 충족되자 다시 한 번 김일성은 1950년 3월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스탈린을 만나서 회담을 나눈다. 거기서 스탈린은 구체적인 전술까지 김일성에게 조언해주며 빠르게 한국을 정복하여 전쟁을 끝내 미국이 손쓰기 어렵게 하라고 한다.



50년 5월에는 김일성과 박헌영은 중국을 공산화로 통일한 마오쩌둥을 찾아가서 한국전쟁을 일으키고자 하며 이에 동의해줄 것을 요구하고 마오쩌둥은 만일 미국이 한국을 지원하여 참전하면 중국도 북한을 도와 참전할 것을 약속한다. 러시아의 한국전쟁에 관한 비밀문서로 이러한 사실들을 알게되면서, 결국 한국전쟁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재촉한 이는 김일성이었고, 소련과 중국은 이런 김일성을 이용하여 자국의 이득을 챙겨보려는 생각으로 한국전쟁을 지지, 지원하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애치슨라인에 대한민국이 빠져있는 점, 전쟁 발발 후 미국의 신속한 대응과 미국이 허접한 소규모 부대를 선발대로 보내 그들의 희생으로 미국 본토내 참전여론을 이끌어 내는 점, 


당시 대한민국이 북한에 군사력이 명백한 열세인데도 미군은 전면철수를 했던 것 등이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한 요소들로 지목되고 있다.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 하기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원조하는 것이기에 1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죽쒀서 개줬다가 2차대전에서는 이를 만회하여 전쟁으로 국력이 일취월장 하는 경험이 있는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과거의 경험을 되살리려는 생각이 없었다는 것은 가능성이 굉장히 희박하다.



국제 정세가 미국과 소련의 이념싸움에 의해 움직이던 시대였고, 한반도는 지리학상으로 또 이들의 각축장이 될 개연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었다. 그렇다면 이를 예견하고 준비하는 한국의 리더가 있어야 했고 미국에 미리 사주하고 대한민국에 가장 유리한 프레임안에 그들을 들여놓아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한 것이다. 때문에 한반도는 전쟁터로 초토화 되어야 했고 민간인들이 수없이 죽어나갔으며 동포를 향해 살육을 저질러 국력이 막장으로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한국전쟁 발발 후 더글러스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쟁 초기, 전세를 뒤집게 되는데 이에 대해 서술하기 전에 전쟁이 일어나는 과정을 이해해 봤다. 이어서 맥아더의 허와 실을 살펴보도록 한다.


2부 링크 : http://powermental.tistory.com/22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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