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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이야기들/인물과 사건

남이 장군 : 조선에서 빼낼 수만 있다면?

조선사 아니, 내가 본 동북아시아 역사속 인물의 시 중에서 남이 장군의 '북정가'만큼 시문에서 패기가 넘치고 호기가 뿜어져 나오는 시를 본 적이 없다.


중국의 두보와 이백이 다 무엇인가. 온갖 미사여구로 화려하게 치장된 문장은 사실 글귀 내면에 담긴 울림보다는 그 글에 따라 그려지는 환상적인 그림에 도취되는 것으로 문장가로서 찬양을 받을 수 있을지언정 독자에게 쇼크를 주지는 못한다.



먼저 남이 장군의 '북정가'를 읽고 계속해보자.


白頭山石  磨刀盡 백두산석 마도진 : 백두산 돌을 도(칼)를 갈아 없애버리고

豆滿江水  飮馬無 두만강수 음마무 :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버린다

男兒二十  未平國 남아이십 미평국 : 사나이 20살에 나라를 평안케 못하면

後世誰稱  大丈夫 후세수칭 대장부 :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부르겠는가


위 남이장군의 시를 처음 보는 이도 있을텐데, 이 시에서 울리는 힘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김구 선생도 나와 같은 '북정가'가 뿜어내는 힘을 느끼고, 이 남이 장군의 북정가를 신탁 반대 시위에 격려의 의미로 선사했다고 한다.


▲ 무신도 in 남이사당


남이 (1441-1468) 장군은 조선 왕 세조 때 크게 발탁이 되어 28살의 젊은 나이에 지금으로 따지면 국방부장관직인 병조판서 자리에 오르게 된다. 단지 이씨 왕가 외척의 사위라는 배경만으로 그리 된 것은 아니고 조선 왕의 큰 위협이였던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고 북방의 여진족도 평정하니 그러한 공으로 마땅히 그런 직위를 받은 것으로 본다.



하지만 남이의 든든한 후견인이라 할 수 있는 세조가 죽고나니 예종의 견제를 받았던 남이는 유자광의 결정적인 반역죄 고발(남이가 반역을 꾀한다는 내용)로 인하여 결국 남이 장군은 사형을 당하게 된다. 



▲ 등림영회도 : 이시애난을 진압한 남이가 백두산에 위치해 있다.


후세들이 남이 장군을 평가하면서 그의 조선왕실의 법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과 정제되지 않은 거친 말, 그리고 숙적들에 대한 예의주시를 통해 그에 따른 적절한 처세가 부족했던 점을 젊은 나이에 능력있는 친구가 꽃이 다 피지도 못한 채 가버린 이유로 꼽고있다.


과연 남이 장군의 조심성이 부족한 치기어린 말과 행동들로 정적들에게 약점을 잡혀 죽임을 당한 것이 남이 장군같은 인재의 소멸에 대한 모든 원인인가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유교 성리학을 국가운영 이념으로 삼았었고, 자연스러운 분쟁과 그에 따른 승자와 패자의 명암으로 힘의 이동이 합리적으로 옮겨지는 시대가 아니었던 때, 남이가 존재했던 것을 외부요인으로 삼아서 판단하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듯하다.



과거의 인물을 평가할 때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물론 감안해서 보아야 하지만, 결국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통찰을 얻기위해 과거의 인물을 뒤적거리는 것이니, 지금 현재로 남이 장군을 데리고 와서 지금 여기서 남이가 활동했다면 어땠을지 생각을 해봐야 한다.


유교 성리학이 아닌 자유민주주의 시대에 남이는 실력이 있고 당당하며 자유분방한 매력적인 인물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오직 각종 중상모략과 몇 수 앞서는 계략이 없어서 남이 장군이 죽임을 당했다고만 판단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어 남이 장군이 부족했던 처세술을 현대사회에 살아가는 나 자신은 남이같은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한다면 오로지 남이의 죽음을 내적 문제로만 귀결시키는 오류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서 그에 맞게 행동하겠다는 말은 쉽지만 누구나 쉬운 말은 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누구나 출세하는 비기를 알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는 것이니 상당히 어려운 문제를 쉽게 말하려 하기보다는 남이 장군의 사례를 통해 최종적으로 확답이 나올 수 있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인물상을 논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된다.




지금 시점으로 조선역사를 보다보면 답답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과연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조선시대를 견디고 살았는지 놀랍기까지 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후세 사람들이 한반도에 존재했던 과거 국가들을 살펴볼 때, 대한민국 파트에서 한국에 살던 사람들을 어떻게 볼지, 지금 내가 조선을 보는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것이 사회 진화의 흐름이고, 우리는 긴 흐름이 이어질 수 있도록 딛는 하나의 징검다리일 뿐이라는 말에 동조를 하며 짧은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봤다.



▲ 남이섬 구글맵 (확대 및 축소 가능)


남이섬은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섬 이름을 남이 장군 이름에서 따왔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언제 한 번 강원도 춘천시에 지날 일이 있을 때 남이 장군을 생각하며 남이섬에 가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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