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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및 이것저것/취미 및 기타

통찰은 어디에서 오는가 : 뒷북 청년의 통찰력과 망상

오래전부터 내 스스로의 장점으로 통찰력을 꼽아왔다. 내가 관심있게 지켜본 분야는 그럭저럭 큰 흐름을 읽어내는데 꽤 정확한 판단을 해왔고 결과를 확인하면서 그러한 나의 능력에 확신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스스로 자부하는 통찰력으로 인해 내가 덕본 일이 없으니 아이러니 하기까지 한데, 상당히 힘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순간부터, 나의 몇 안 되는 강점으로 여기고 있던 통찰력이 통찰이 아닌 망상이나 몽상이 아닐까 의심이 되더라. 이제 그 부분을 확실히 파악하고 싶다. 만약 통찰이 아니라 망상이었다면 굳이 자기합리화하는 습관을 고쳐, 작은 기회라도 이것들을 놓치는 일들을 줄여야 되지 않을까.



▲ 공동구매 시스템


본격적으로 인터넷 공간을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그 잠재력을 어느정도 몸소 느끼기 시작했을 때가 2007년 즈음 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의 특정공간에 모이면, 분명 거기서는 경제활동이 생기기 마련일 것이고, 내가 직접 주도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네이버나 다음 포털의 카페였다.



카페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카페장이 그 카페 안에서는 (카페 속 그들만의 세상에서)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을 모두 가진 최고 권력자로 행사하는 것이 아닌가. 그 카페에서 이런 권력을 이용하여 카페장은 회원수에 비례하여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게 생각만 하고는? 나는 카페는 만들지도 않았고 블로그의 잠재력을 생각했으면서 블로그는 시작하지도 않았다. 단지 2000년대 초중반을 생각하면 오로지 친구들만 매일 만나 술마시며 헛된 시간만 보냈었다. 2007년 즈음에 인터넷 생태계를 돌이켜 보니, 일정 규모가 넘는 포털 카페장들이 수익활동을 하고 큰 돈을 벌고 있었고, 블로그는 2007년부터 초 상승세를 타더니 2009년~2010년에 전성기를 맞이하더라. 나는 블로그라는 시스템이 한물 가고나니 역시 뒷북을 치며 블로그를 이제 시작하고 있다.



▲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매트 하딩


유튜브 초창기에 매트 하딩 (Matt Harding) 이라는 청년(유튜버)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우스꽝 스러운 춤을 추던 영상이 대박을 쳤었다. 2006년부터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나는 2009년 정도에 매트 하딩 영상을 본 것으로 기억난다. 회사에서 상사들의 지나친 업무 전가에 당시 성질을 못 죽이고 욱하며 사고를 친 적도 있고 멘탈관리가 안되어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곤 했는데, 그때 매트 하딩의 유튜브 영상을 접하게 된 것이다.


친한 친구녀석들과 매트 하딩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었다. 당시 매트 하딩은 전세계를 여행하며, 유튜브 영상으로 많은 조회수를 올리고 있었고, 세계적인 껌 (gum) 기업에게 후원을 받아 비용을 충당한다는 것이 주된 토론 내용이었는데, 그때는 유튜브에 광고시스템이 없었던 때였던 거 같다. 매트 하딩과 같은 삶은 자유를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이상적인 삶의 방식이 아닌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친구들이 모인 상태에서 사회가 정해준 틀을 벗어나는 것은 '낙오'의 낙인이 찍히는 것이며 이에 대한 거부감으로 토론은 귀결된다. 다들 그렇게 공무원으로 회사원으로 돌아가고, 당시 회사를 퇴사한 나로서는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강구하는데, 결국 국가가 정해준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허비하게 된다. 왜 유튜브의 잠재성을 파악했으면서 거기에 몸을 담기 주저했고 결국 하지 않았는가.



▲ 유튜버의 삶


매트하딩뿐만이 아니다. 당시 나는 또 다른 직장에 들어갔었고 성공적 프리랜서로서의 갈망에 항상 그만둘 것을 생각하고 유튜브 등, 자생할 수 있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지금 유튜버 중에 영국남자라는 영상 한 개 올리면 하루 이틀이면 조회수 100만을 찍는 한국말 잘 하는 외국인이 이는데, 이 친구가 영상 2개 올렸을 때부터 매번 지켜봤었다. 결국 1년 정도 지나니 상당히 성장하더라.



그 모습을 전부 지켜봤으면서 결국 나는 유튜브 활동을 시작하지도 않았고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유튜브로 수백 수천만 원을 버는 요즘시대에도 나는 유튜브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않고 있는 건 여전하다. 남들보다 상당히 이른 시간에 유튜브 같은 특정 생태계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파악했으면서, 기웃거리기만 하고 왜 기성 사회 시스템에서 과감히 발을 떼고 내가 판단한 새로운 생태계에 선구자로 진입하기 꺼려하는 태도를 보이는가.



▲ SNS 의 양대산맥 트위터, 페이스북


2009년 즈음은 미국에서 소셜미디어 (소셜네트워크, SNS) 로 인한 인터넷 생태계의 2차 변혁이 예고되던 시점이었다. 휴대폰이 상당히 보급된 시점에서 모바일 기반인 소셜미디어 (SNS) 의 네트워크 구축은 또다시 새로운 기회로 다가올 것이고 여기서 많은 주목을 받는 사람은 수익창출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 예상이 되었다.


스스로 관련 서적도 구입해서 보고 한국에 소셜미디어 (SNS) 가 정착하기전에 먼저 그 원리를 파악하고 기회를 잡아봐야겠다고 생각했으나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자 금방 흥미를 잃어 지금까지 수익모델 실현은 커녕 개인적으로도 거의 SNS를 하고있지 않다.



▲ 진화하는 배달 시스템 (드론 배송)


2008년 정도에는 스마트 폰의 보급을 파악하고 2009년에 정확히 배달 대행업체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완성하여 일단 가족들에게 평가를 받았었다. 그러고 나서 세무 전문가와 의논해보고 배달 어플에 대한 구상을 해보다가 구체적인 수익모델과 수익성에 대한 회의감이 들자 이 사업계획을 실현해 보고자하는 의지가 사라지게 된다.


정확히 1년 후에 배달의 민족 어플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나는 배달 대행업체 어플을 구상한 것이었지만, 시행착오를 겪고 수익성이 가장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찾았다면 음식가게 배달 어플쪽으로 자연스레 루트 수정이 됐을 거라 생각해본다. 배달의 민족 사장도 처음에는 전화번호부로 시작했다가 수익성이 높은 배달음식업체 소개 어플로 바꿨다고 하니 말이다.



▲ 통찰과 망상 (몽상) 사이


대표적으로 바로 떠오르는 4가지만 예로 들어봤는데, 이 외도 많지만 이것으로도 예시는 충분한 듯 하다. 나는 특정인이 정해놓은 삶의 방식에서 정녕 자유롭고 싶은 것인가 물음에 대한 답을 낼 때가 온 듯 하다. 남들이 많이 가는 정도로 여겨지는 삶의 방식을 우습게 여기기도 하면서 왜 나는 거기에서 멀어지기 두려워 하는가. 마치 권위주위의 상관을 싫어하면서 자신이 권위주의의 인간이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것과 비슷한 맥락인 듯도 보인다. 부당한 구조를 근본적으로 싫어하는 것인가 단지 내가 불편한 상황을 싫어하는 것인가.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모험하는 이들을 경이롭게까지 여긴다고 하면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건, 진짜 그들의 기업 경제활동을 높은 가치로 여기는 것인지, 아니면 구태한 사농공상의 정신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수박 겉핥기 식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강에서 바다로 흐르는 물줄기 방향을 예상했다고 그것이 뛰어난 통찰력이라 생각한 것의 실체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해 확신 없어 움츠려드는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한계를 자각했지만 인정하지 못하는 자기 합리화인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토록 안타깝게 또는 혐오한 탁상공론 백면서생의 모습이 나일 수도 있겠다. 도전 자체를 두려워하고 몽상은 망상이 되며, 결국 실현되지는 않는 공허한 외침을 질러본 것에 지쳐 나가 떨어지는 별볼일 없는 필부. 지금 이 블로그를 하면서도 이미 블로그의 전성기는 한참 지나 다른 매체의 전성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파악하고 있는데 데 안정 지향성에 블로그를 이제 시작하는 게 아닌가 싶다. 통찰력은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지식을 기반으로 상황을 예견해 재조합하여 판단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실체인 경험에서 오는 몸소 느끼는 피드백 과정이 매우 중요한 마무리 단계로 생각된다.


만약 바뀌지 않는다면, 또다시 미래에 몇 번 다가올 큰 기회를 보고만 있다가 지나쳐 보낼 것이다. 늘 그래왔듯. 만약 능력이 없는 것이라면 그것에 만족하며 사는 방식을 익혀야 할 수도 있다. 능력이 없이 이상만 크다면 현실과의 괴리에 그런 상황을 매번 맞닥뜨리는 자신만 손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플라세보 (위약효과) 로 얻는 긍정적인 효과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자존감 형성의 소스이기에 여전히 망상속에 살 것인지, 한계를 인정할 것인지 어느 것이 더 좋은 선택일지는 확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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