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추태후는 헌애왕후가 천추궁에 살았다고 해서 천추태후로 불리는 일종의 별명이다. 나도 과거에 천추태후의 단어가 주는 느낌 자체가 당나라의 여황제 측천무후와 그 명칭이 비슷하여 이 둘의 구별이 헤깔리기도 했었고, 천추태후가 고려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때도 있었다.
역사 교과서에서 천추태후가 비중있게 나오는 인물도 아니고 해서 관심 가는 인물도 아니었었다. 그러나 강조의 정변이라는 고려 초기 일대 최초의 신하가 왕을 갈아치우는 큰 사건에서 천추태후는 강조의 정변 사건의 핵심인물이고 그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놓칠 수 없는 탐구대상이 되었다.
▲ KBS 사극 천추태후
위 사진 포스터는 2009년에 KBS 에서 '천추태후' 라는 제목으로 방영이 됐던 드라마이다. 고려 전반기에 고려왕 경종부터 현종까지의 시기를 다룬 드라마인데 배우 채시라가 주연인 천추태후역을 맡았다. 당시에는 사극에 그렇게 흥미가 없어서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극중에서 고려왕들을 여러 거치면서 주인공인 천추태후가 꾸준히 연계되어 나오는 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고려 전기 역사에서 천추태후가 비중있는 인물인가를 예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천추태후 (964-1029)
초기 고려왕실은 족내혼을 했었는데, 때문에 족보가 복잡하다. 하지만 현대적인 관점으로 얼굴을 찡그리면서 고려 왕씨 가계도를 볼 필요는 없고, 족내혼은 왕씨 자신들의 권력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천추태후는 고려왕 경종의 아내이자 목종의 어머니, 성종과는 남매사이이고 현종에게는 이모가 되겠다.
경종이 빨리 죽자 천추태후의 어린아들 대신 성종이 왕이 되었는데 유교 통치이념으로 무장한 성종은 선왕의 비였던 천추태후와 김치양과의 정분사실을 눈감아줄 수 없었다. 성종은 김치양을 유배보내 천추태후와 떼어놓기도 하지만, 성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천추태후 아들 목종이 고려 왕에 오르고 천추태후는 섭정을 통해 고려에 유학을 멀리하게 만들고 토속 신왕과 불교를 융성하게 하는 정책을 편다.
그리고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아들을 고려왕으로 만들고자 후에 현종이 되는 대량원군을 죽이려고 여러번 시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목종의 안위가 위태로워지고 목종이 친히 고려 최정예 부대로 서북쪽을 지키고 있던 강조 장군을 불러들여 스스로 화를 자초하게 된다.
▲ 유럽에서의 정변
정변이 일어날 때, 그 원인과 발달 과정의 역학관계를 정확하고 명확히 파악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수많은 요소들이 정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떤 특정요소가 영향을 끼친 경중을 따지고 다른 환경적 요인의 존재여부를 저울질 해서 판단하는 것 역시 수학에서 방정식 풀듯 딱 떨어지는 사칙연산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목종의 충성스러운 신하였던 강조가 군대를 일으켜 천추태후 모자를 실각시키고 현종을 옹립하며 자신은 명실상부 고려의 1인자가 되는 강조의 정변 사건을 천추태후가 그런 큰 사회변동 사건의 시작이었다는 근거를 몇가지 가지고 살펴보면 흥미로운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
▲ 천추태후 드라마 속의 강조
당시 동북아시아 왕정시대에서는 왕의 권위가 떨어질 때, 나라의 국경지방에서 정예군을 데리고 외국의 침범을 막던 장군들이 군대를 수도로 몰고 쳐들어가 정변을 일으키는 사건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그리고 그 군대를 수도로 불러들이는 것에는 권위자의 허락이 동반되는데, 목종이 자신의 불안한 안위를 건실하기위해 직접 왕명으로 강조를 부른 것 처럼 말이다.
천추태후는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아들을 허약한 목종에 이어 고려왕으로 옹립하고자 하였고 김치양에게 많은 권력을 쥐어주었으며, 목종은 자신의 생명이 걸린 상황에서 김치양에게 도움을 바랄 수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어머니인 천추태후마저도 김치양과 엮여있어 믿을 수 없던 목종은 자신을 미친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호랑이를 불러드린 셈이 된다.
▲ 위기 대처 능력
강조는 목종이 천추태후와 김치양 등 불순세력에 의해 죽었다는 소식 전해듣고나서 군대를 이끌고 개경으로 진격한다. 그러나 개경에 도착하고보니 목종이 살아있는 것을 알자 오히려 자신이 역모혐의를 뒤집어 쓸 것 등을 걱정해 오히려 천추태후 모자를 실각시키고 새로운 왕인 현종을 옹립하게 된다.
실제로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서북면에서 고려 정예군을 이끌고 거란족을 막고있는 강조가 개경으로 오는 것을 경계했다는 내용이 보이나 국가가 보유한 대규모 군대 정예군를 지휘하는 육군장군에게 그 장군 자신이 자신을 부리는 리더에게 신뢰받고있다는 생각을 심어주지 못한다면, 그 장군에게 쥐어준 힘은 리더 자신을 겨냥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어야 한다.
사람을 쓰기로 했으면 믿고 못 미더우면 쓰지 말라는 말이 이런 내용맥락과 상통할 수 있다고 본다. 강조는 혼란의 상황에서 허수아비 목종의 아량보다는 김치양과 천추태후의 자신에 대한 죄를 묻는 상황이 유력하다고 판단하여 결국 목종을 폐하고 천추태후를 유배보내며 김치양을 죽이게 된다.
▲ 권위를 만드는 카리스마
목종이 왕이 될 때, 18세라는 섭정이 그다지 필요치 않은 나이에도 천추태후는 자신의 아들의 섭정을 시작한다. 목종 초기에 나왔던 정책들 대부분은 천추태후가 주장한 내용들로 보며, 학계에서는 천추태후의 성향을 연구하는 자료로 쓰이고있다. 또한 자신의 연인이자 정치 파트너였던 김치양에게 많은 힘을 실어준 천추태후의 행동은 목종의 왕권 약화를 더욱 가속화 시키는 행위가 되었다.
당시 왕정시대에 왕의 권위는 왕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가장 큰 요소들 중 하나였다. 왕의 권위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리더들도 마찬자기로 권위는 카리스마에서 나오는데, 그런 카리스마는 특정 한 사람이 과거부터 자신이 경험하는 매 사건사건마다 습득되는 일종의 태도와 자신감으로 부터 구성된다.
하지만 천추태후는 목종이 왕으로서 가져야할 권위 습득의 기회를 빼앗는다. 결국 당시 중세 왕정시대의 국가인 고려의 지도자가 가져야할 필수적 요소가 결핍됐었고, 군대를 몰고온 강조가 순간 목종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할 때, 목종의 권위의 부재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 폐위시켜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3가지 내용을 천추태후가 강조의 정변을 불러온 이유로 분석해봤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이런 내용은 응용을 통해 자신에게 적용하여 실수를 줄이고 자신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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